진료실 이야기 - 돈이 없어서 생긴 병?
베이비홈닥터

돈이 없어서 생긴 병?

통통하게 혈색이 좋고 건강해 보이는 여자 아이가 할머니와 함께 두통과 배가 아프다고 왔습니다.

환자 정보를 보니 초등학교 4학년인데, 그 또래 아이 치고는 표정이 없고 말수가 적습니다.

언제부터 아팠냐고 하니까 어제부터 아팠다고 합니다.

진찰상 이상소견은 발견 할 수 없었고 기질적인 몸의 이상 원인은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아이는 ‘네 맘대로 해봐라 난 상관 없으니’ 라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할머니의 표정은 달랐습니다.

할머니는 ‘청진기 대 봤으니 빨리 무슨 병인지 밝혀라’ 와

‘나는 내가 궁금한 건 뭐든지 물어볼 권리가 있느니 성실히 답변을 하라’의 중간쯤 되는 표정으로,

“선생님.. 아이가 어디가 아픈 거에요..? “

라고 공손히 물어 왔습니다.

“글쎄요?. 별 이상이 없는 데… 혹시 아이가 고민거리나 신경 쓸 일이 있으면 신경성으로 두통이나 배가 아픈 경우도 있는데요.."

할머니는 병이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애매모호한 의사의 대답이 못 미더운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못 미더운 표정을 하는 할머니 얼굴을 바라보며 저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 너 혹시 요사이 신경 쓰는 일이나 고민거리가 있니..? "

당당하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던 아이는 ‘내 고민을 다른 사람들이 어찌 알겠느냐’ 라는 표정으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 나는 돈이 없어요.“

'...?'

조금은 황당했지만 나도 질세라 곧바로 물었습니다.

“ 돈 있으면 뭐하게..?”

“ 스티커 사게요."

“ 그래 스티커가 얼만데..?”

“ 자세히 몰라요 찾아 봐야돼요"

“ 근데 그게 꼭 필요 한거냐..? “

아이는 말없이 고개만 까딱합니다.

“그래.. 그럼 우선 그 스티커가 얼만지 가격을 알아서 돈을 모아 사는 계획을 세워라..”

“근데 택배비가 더 들어요…”

이런! 택배비를 미처 생각하진 못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응답을 해주었습니다.

“아~ 너 인터넷으로 살려고 하는 구나."

아이는 이제야 내 맘을 알아준다는 듯한 표정의 함박 미소와 함께 우렁찬 대답을 했습니다.

“ 네~~~!"

이때 할머니의 얼굴 표정이 ‘어이가 없네’인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감성에 치우치지 말고 오로지 의학적 이론에 따라 이성적이고 계획적이고 예측 가능한 처방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하 ~~~ 바로 그거였구나... 그럼 간단하지... 돈이 얼마가 필요한지 계산을 한 다음 그 돈을 모을 목표를 세워서 조금씩 돈을 모으면 재미가 있을 거다.. 한 두달 모으면 될 것 같은데.. 돈을 다 모아 스티커를 사면 성취감과 만족감.. 얼마나 기쁘겠냐… 그치.. ?? 이제 고민이 해결됐네! 어때 네 생각은 ..? 만족하지..?"

아이는 뭔가 낚였다는 표정으로 알 듯 모를 듯 ‘이게 아닌데’ 라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런 대답 없이 마지 못해 고개만 살짝 끄떡였습니다. 마치 ‘대답해 주느라고 참 애쓴다’ 라는 듯이 말이죠.

문제는 아이와 내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할머니와 아이는 한번도 서로 바라보지 않고 나에게만 얘기를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둘 사이에 뭔가 팽팽한 기운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마치 나에게 솔로몬 재판의 명쾌한 해법을 기대하며 바라보는 표정이랄까..?

인터넷으로 뭔가를 사보겠다는 초등학교 손녀와 이를 못하게 하는 할머니와의 갈등이 증상의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튼 처방을 원하는 할머니를 위해 문제가 생기지 않을 소화제와 두통약을 처방하고 아이에게 아프면 먹으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제발 이 약 먹고 좋아지고.. 다시는 돈 없다고 병원에 오지 말아라’ 라고 빌었습니다.

진료실을 나가는 손녀와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점점 심해지고 있는 소아 연령층 인구 감소에 대한 소아과 의사들의 걱정은 누가 처방을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네이브키즈 연세 소아과에서는 “돈이 없어서 생길 수 있는 병” 도 고쳐 볼라고 노력합니다.

네이브키즈 연세소아과 원장 손영모